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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스 칼럼
 
작성일 : 15-08-15 03:35
우리 자녀 성공 비결 - 성공을 부르는 키워드 감사 시리즈 10
 글쓴이 : 코리안저널
조회 : 1,182  
■ 편도선 수술
 
나는 어릴 적부터 기관지가 좀 나빴다. 그래서 어릴 적에는 약간의 천식끼가 있었고 늘 콧물을 달고 살았던 것 같다. 하기야 필자가 어릴 때에는 대다수의 아이들이 코밑에 말라붙은 누런 콧물과 벌겋게 튼 양볼과 목젓에 또렷한 몇 개의 뗏국물 자국이 전국의 동네 골목에서 아무렇게나 뛰어 노는 수많은 아이들에게서 흔히 발견할 수 있었고 기침으로 콜록콜록 하는 소리와 천식으로 갤갤대는 소리도 어딜가도 들려오는 소리였다.
초등학교에 진학하며 가정형편이 나아지고 천식끼는 사라졌지만 기관지계통이 좀 안 좋아서인지 운동회를 하며 고함을 많이 지르거나 소풍을 가서 좀 미친 듯이 놀다오면 여지없이 목이 쉬고 열이 나며 콧물이 질질 흘러 결국 볼채기(Ear Infection)를 하곤 했다.
초등학교 2학년을 마칠 무렵 아버지의 사업형편이 나아지며 우리 가족은 좀 더 넓은 평수의 아파트로 이사를 갔는데 이전까지의 환경과는 달리 아파트 위치가 놀이터에서 좀 떨어지게 되었다. 게다가 3학년부터 갑작스레 반장이 되며 체면때문에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워낙 밖에 나가 노는 것을 좋아하는 ‘바깥돌이’ 갑자기 운동량이 줄었는데 먹는 양은 그대로이니 점점 살이 찌기 시작해 급기야는 신체충실지수 ‘마’의 수퍼우량아가 되었다. 사실 신체충실지수에 ‘바’가 있었다면 아마도 나는 ‘바’에 속했을 것이다.
초등학교 6학년을 마칠 무렵의 봄방학 때 부모님은 나를 데리고 병원에 가셨다. 평소의 기관지 문제를 당시 갑작스럽게 유행했던 ‘편도선 수술’ 이란 것을 하면 해결할 수 있다는 누군가의 말에 귀가 솔깃하셨던 것 같다.
의사 선생님께서 나를 진단하신 후 수술을 하자고 하셨고 곧바로 수술 준비를 했다. 옷을 벗고 끈이 달린 이상한 파란색 옷을 입고 몸무게를 재었다. 나는 남이 나의 몸무게를 재는 것이 싫었지만 수술을 위한 전신 마취를 위해서 반드시 체중을 알아야 한다고 했다. 사실 안 그래도 많이 나가던 당시 나의 몸무게는 폭발적으로 증가해 있었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부모님에게 이 아이의 몸무게에 근거하면 6학년 학생인 나에게 성인남성 분량의 마취개스를 투여해야 한다며 약간 걱정이 되지만 어쩔 수 없다고 하셨다. 화가 나서 난동을 부리는 코끼리를 제압하려면 마취총을 여러방 쏘아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였던 것이다.
수술대에 누우니 여러개의 수술용 원형 등에서 강렬한 불빛이 내 전신을 위압했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무슨 헤드폰 한 쪽 같이 생긴 마스크를 주시며 숨을 들이 마시라고 하셨다. 그리고 숫자를 열까지 세면 자연스럽게 잠이 들 것이고 잠에서 깨어나면 이미 수술이 다 끝나 있을 것이라며 아무 걱정 말라고 하셨다.
나는 ‘이까짓 수술 겁나지 않아, 대범하게 숫자를 세는 거야’ 라고 스스로에게 다짐하며 코와 입을 다 덮는 마스크를 쓰고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예상과 전혀 다른 일이 벌어졌다.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숫자는 ‘둘’ 이었다. 아마도 몸무게는 성인이나 아직 6학년 아이에게는 상당히 강한 마취개스였던 것 같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4시간 정도 후에 내가 깨어날 거라고 하셨다. 하지만 나는 5시간, 6시간이 지나도 깨어나지 않았다. 나는 위험해 질 수 있는 단계 직전, 11시간 정도가 지난 후에야 마취에서 깨어났다.
지금도 또렷이 기억나지만 마취에서 깨어난 후 지독하게 목이 말랐다. 피를 꽤 흘렸으니 당연한 것이었다. 하지만 의사선생님께서 물을 마시면 안 된다고 하셨다. 수술로 인해 목소리가 안 나오는데 목은 말라 죽겠고 준비해 온 종이에다가 미친 듯이 ‘물’ 이라고 적어 어머니의 눈앞에 흔들었다. 나의 고통을 보다 못한 어머니께서는 가제 손수건에 소량의 물을 적셔 나의 마른 입술만 조금씩 닦아 주셨다.
그리고 배가 무지하게 고팠다. 수술을 위해 아침도 굻은데다가 수술 후 꽤 많은 시간이 지났다. 기근의 고통을 호소하는 위장의 아우성이 나의 목소리를 대신해 나의 고통을 웅변해 주었다. 그렇게 먹는 것을 좋아하는 아들의 애절한 눈동자를 어머니는 애써 외면하셨다. 나는 이따위 수술로 굶주림의 고통을 준 부모님을 저주했다.
시간이 좀 지나자 병원에서는 더럽게 맛이 없는 미음을 주었다. 딱딱한 음식은 절대 먹으면 안 된다고 금하셨다. 아플 때에도 거의 먹은 적이 없었던 미음밖에 먹을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자 본의 아니게 식사량이 줄었다. 타의에 의한 것이었지만 열량섭취가 줄다 보니 체중도 줄었다. 회복 후 퇴원한 후 식사량이 조금씩 늘었지만 이전처럼은 아니었다.
나는 그렇게 중학생이 되었고 신체충실지수는 표준인 ‘다’가 되었다. 길에서 초등학교 동창 친구들을 마주칠 때 눈이 휘둥그레 커지는 아 ‘새옹지마’란 고사성어가 주는 교훈을 생각할 때 나는 늘 ‘편도선 수술’을 생각한다. 그리고 그 수술을 시켜주신 부모님께 감사한다. 언뜻 생각할 때 힘들고 괴롭고 불공평하고 치사하고 하기 싫은 일이 자신에게 큰 기회가 될 수 있는, 향후 크게 감사할 일이 될지 누가 알겠는가?

테스트 브레인 (469-441-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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