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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스 칼럼
 
작성일 : 15-08-29 04:26
우리 자녀 성공 비결 - 성공을 부르는 키워드 감사 시리즈 11
 글쓴이 : 코리안저널
조회 : 896  
■ 대한민국
 
8월 15일은 36년간의 일제의 압제에서 우리 민족이 해방된 날이자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계승해 우리나라에서 대한민국 단독정부를 수립한 날이다. 우리는 늘 뿌리를 강조하면서도 동시에 우리의 뿌리를 부정하는 자기 모순적이고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지닐 때가 많다.
우남 이승만 대통령은 구한말 이씨왕조의 핏줄로 태어나 한학을 배웠고 이후 YMCA 선교사들을 통해 문물교류와 외교의 중요성을 실감하고 늦은 나이에 영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직 모자라는 영어 실력이지만 선교사들의 추천과 도움을 받아 도미하여 유학 생활을 시작했다.
피같은 후원금을 아끼기 위해 박사과정을 하면서 “나는 대한민국을 위해 매우 중요한 과업을 수행해야 하는 중요한 위치에 있으니 최대한 박사 과정을 빨리 마치도록 해 주십시오.” 라고 요구할 정도로 학업에 임하는 자세가 남달랐다.
필자는 이미 문명의 이기가 충분히 발달한 1996년에 미국에 와서 많은 도움을 부모님께 받았고 중학교 1학년부터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10여 년간 영어를 공부한 후에 유학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유학 과정에서 이런 저런 불평불만으로 지냈는데 당시 전 세계 최빈곤국이며 나라의 주권을 빼앗긴 식민지 치하의 나라에서 거의 20세가 될 때까지 영어나 신학문을 거의 접해보지 못한 이승만 대통령은 혈혈단신으로 도미해서 학사와 박사과정을 마친 것을 생각하면 그분의 지력과 의지력을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 고국의 주요 언론매체에서 국민들을 상대로 대한민국 건국 이후 대통령들 중에서 대한민국의 발전에 대한 기여도를 조사한 바가 있는데 초대 대통령 우남 이승만 박사의 기여도를 낮게 평가한 결과를 보았다.
물론 필자도 대학을 다닐 때에는 민족해방 계열의 학생운동 핵심 학과에 다니면서 학회도 하나 맡아서 교투, 가투 등을 전전하곤 했던 기억이 있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과 박정희 대통령은 당연히 독재자라고 매도하는 것은 당시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베를린 장벽이 허물어지고 동서독이 통일되는 것을 목격하고 수십 년 동안 쳐져 있던 ‘철의 장막’이 내려가고 구소련이 해체되는 것을 목도했으며 1991년 정원식 장관의 ‘희생적인’ 계란 및 밀가루 세례 이후 학생운동이 급격하게 지지를 잃는 것을 경험한 나는 대학가 근처의 서점의 책장을 가득 채우고 있는 소위 ‘사회과학’ 서적들의 내용들에 대해 심각한 의구심을 갖게 되었고 다양한 시각들을 접하면서 미국이 ‘미제 침략자’ 가 아니며 우리 대한민국에 있어서는 매우 고마운 ‘우방’ 임을 부인하기 힘들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승만 박사가 대통령이 될 당시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은 70센트가 채 되지 않았다. 조선 말기 무능력한 왕조, 거듭되는 외세의 침략, 지독한 지방 가렴주구의 양민수탈 등으로 이미 국력이 매우 약했는데 36년간의 일제의 가혹한 침탈로 자원과 식량과 노동력을 모두 빼앗긴 우리는 전 세계 모든 국가 중 바닥의 국력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 좌익이 판치던 한반도에서 좌익에 대해 낭만주의적인 생각만 지니고 있던 대다수의 민족지도자들과는 달리 우남 선생은 김일성과 북한 공산세력의 실체에 대해 정확하게 파악하고 반대세력을 무릅쓰고 남한 단독 정부 수립을 단행했는데 나는 이 결단이야말로 오늘날 대한민국을 가능하게 한 위대한 정치적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우남 선생은 원조를 받으면서 당당히 큰소리쳤으며 거제도 포로수용소의 사상범의 석방까지 불사하면서 요구조건을 관철시키는 외교의 대가였다. 사실 북한이 지금 즐겨 쓰는 ‘벼랑 끝 외교’ 의 원조는 바로 이승만 대통령이다.
이승만 대통령은 일제가 미국 진주만을 공습하기 1년 여 전 ‘Japan, Inside Out’ 이라는 저서를 통해 일제의 실상을 미국에 알려 당시 ‘친일’ 분위기가 팽배했던 미국 국회와 국방부에 경종을 울리고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1년여 후 실제로 이박사가 예상한 지역 중 하나인 진주만이 일제에 의해 공습을 당하자 이박사의 열렬한 ‘팬’ 들이 미국 지도층 사이에서 생겨났다.
우리가 6.25 남침을 당해 파죽지세로 북한에게 밀리고 있을 때 트루만 대통령의 허가가 떨어지기도 전 신속하게 항공모함을 출정시킨 태평양 제 8 함대 사령관 맥아더 장군도 당시 이박사의 ‘팬’ 중의 하나였다. 만약 맥아더 장군과 미 제 8함대가 빨리 오지 않았더라면 지금 우리는 김정은의 사진에 경례하며 혹시 말을 잘못 했다가 총살이나 당하지 않을까 벌벌 떨고 있어야 할지도 모른다.
오랜 조선왕조의 실정, 36년간의 일제의 압정, 동족상잔의 6.25 사변을 겪고서도 이승만 박사는 하야할 당시 우리나라의 일인당 국민소득을 70여 불로 올려놓았다. 물론 이런 과정에서 친일파의 완전한 숙청에 실패했고 장기집권의 ‘과’가 있었다. 하지만 이승만 박사가 우리나라를 거지움막 수준에서 최소한 판자집의 수준으로 올려놓고 공산세력으부터 대한민국을 지켜낸 지도자로서 큰 ‘공’을 세운 것은 잊지 말아야 한다.
필자의 생각에는 미국이 건국의 아버지들 중 으뜸으로 생각하는 조지 워싱턴 대통령보다 우리 이승만 대통령이 지도력, 학식, 인품, 희생정신 등 모든 면에서 압도적으로 우월하다고 생각한다. 자기집 노예의 생이빨을 뽑아 자신의 썩은 이를 대신해 이식한 워싱턴 대통령을 국부로 추앙하는 미국인들을 볼 때 우리는 우리 자녀들에게 이승만 대통령의 공을 분명히 가르치고 대한민국 건국의 아버지로 다시 자리매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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