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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스 칼럼
 
작성일 : 14-05-24 05:37
“정치적임을 두려워하지 말라”
 글쓴이 : 코리안저널
조회 : 2,008  
세월호 참사의 여진이 한달이 넘도록 대한민국을 흔들고 있다.
국민들의 수신료로 운영되는 공영방송국이 파행을 거듭하고 있는 가운데 현직언론인 5623명이 “보도통제 진상을 밝히라”는 시국선언을 발표했고, 서울대 교수들은 ‘적폐를 척결하겠다’는 대통령을 겨냥해 “무능한 정부가 적폐 그 자체다”고 직사포를 날렸다.

유신으로 회귀의 조짐을 보이고 있는 공안정국에서 언론인들과 교수들이 ‘무대’ 위에 뛰어오른 ‘용기’는 국민들의 분노에서 비롯됐다.
대통령으로 대표되는 대한민국 기득권의 힘보다 국민들의 힘이 더 커졌다는 뜻이다.
분출한 국민의 분노는 마침내 대통령의 얼굴에 눈물을 만들었다.
진정 세월호 희생자들에 대한 슬픔탓이었는지, 참사 이후 하루도 편하지 못했을 마음고생 탓이었는지, 아니면 그야말로 ‘정치쇼’였는지 어쨌든 사과와 공감에 인색하기만 했던 ‘얼음공주’의 눈에 눈물이 흘렀다.

대체로 국민들이 무대에 나타나는 것을 싫어하는 부류가 있다.
소수의 기득권층과 그에 부화뇌동하는 세력이다.
그 기득권층의 부패가 심할수록 그 경향은 더 짙어진다.
대형교회들을 이끌면서 이미 오래 전에 대한민국의 기득권에 합류한 한기총이라는 집단의 부회장 타이틀을 갖고 있는 한 목사가 이들의 심정을 대변한다.
2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연지동 한국기독교연합회관 내 한기총 회의실에서 열린 긴급임원회의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가난한 집 아이들이 수학여행을 경주 불국사로 가면 될 일이지, 왜 제주도로 배를 타고 가다 이런 사단이 빚어졌는지 모르겠다”
‘물신주의’에 빠진 어른들의 무책임 속에 수백명의 어린 학생들이 목숨을 잃었는데, ‘영혼 구제’를 본업으로 하고 있는 목사라는 사람이, 대한민국 기독교를 대표하는 조직의 리더라는 인간이 공식석상에서 했다는 말이다.
얼마전 드라마에서 본 한 대사가 생각난다. 상대방이 터무니 없는 이야기를 하자 이렇게 대사를 친다.
“그게 말이야, 당나귀야”
그냥 웃을 수 밖에 없다.

국민들의 상식과 동떨어진 세계에 살고 있는 이들 기득권 세력은 또 이렇게 말한다.
“세월호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라”
한 보수 언론은 청와대로 향한 유족들을 향해서도 유족들이 정치에 이용당하고 있다고 평했다.
‘정치적 이용’이 무슨 뜻일까?

대체로 ‘정치’라는 용어는 유쾌함과는 거리가 있다.
생활 속에서 정치는 형용사로 쓰이고 기회적이라는 의미로 풀이된다.
머리는 좋은 듯 보이는데 신뢰하기는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다.
보통의 경우 정치적이라는 소리를 들으면 욕먹은 것 같이 기분이 나빠지기도 한다.
그래서 그런걸까? 사람들은 정치라는 언어를 별로 좋아하지 않고, 정치인은 혐오의 대상으로 치부되기까지 한다.

소시민들에게 정치는 ‘그들만의 리그’로 간주된다.
그런 것 몰라도 하루하루 삶을 영위하는데 별문제가 없다.
드라마와 음악을 즐기고, 하늘의 별을 보면서 우주를 생각하고, 가족들과 사랑을 나누는 개개인의 견고한 삶 속에 정치 따위의 ‘구린내’가 끼어들 틈은 없다.
 
그러나 집 문 밖을 나서면 사정이 달라진다.
한국의 경우 버스와 지하철 요금이 정치이고, 환율로 변동되는 장바구니 무게가 정치이고, 아픈 몸을 치료해 주는 병원비가 정치이고, 대학등록금이 정치이며, 직장내의 인간관계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권위주의 문화가 정치이고, 역사와 세상에 대한 시각을 제공해 주는 교육이 정치이다.
생활의 모든 것이 정치인데 단지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다.

세월호 참사는 대한민국이라는 사회의 부조리가 쌓이고 쌓여 생긴 참사이고 인재다.
정치적인 접근 없이 이 문제를 풀 수 있을까?
원인을 분석하고 전문가의 의견을 듣고, 국민의 생각을 모으고 제도 개선에 반영하는 이 모든 과정을 ‘정치’ 아닌 다름 이름으로 부를 수 있을까?

비극을 당한 단원고의 페이스북을 운영했던 최승원 씨가 말했다.
“잊지 않고, 가만히 있지 않는 것이야말로 제 후배님들과 선생님들에 대한 예의 … 지금 여기서 저는 감히 여러분을 선동하고자 한다  … 정치적임을 두려워하지 말라”

대체로 오늘날 인류가 이 정도의 자유와 평등을 누리며 살게 된 역사는 소수에게 독점됐던 권력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분배되는 과정이었다.
그 과정의 구체적인 모습은 시민들의 정치참여였고 그것을 얻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리며 죽어갔다.
지난 주 34주년을 맞은 518민주화 운동도 그 자랑스런 역사의 일부분이었다.

플라톤이 말했다.
“정치 참여 거부에 대한 징벌 중 하나는 자신보다 하등한 존재에 의해 지배당하는 것이다.”

지난 18일 달라스 동포들이 세월호 추모 집회를 가졌다.
한 참가자는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 수도 있었지만 정치적으로 이용 당한다는 비판 때문에 나오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추모집회는 24일 오후 2시 다시 열린다.
H마트 몰과 코마트 앞에서 동시에 진행된다.
‘정치적’이라는 말이 마음에 걸려 참가를 주저했던 동포들은 2차 집회에서 용기를 내길 바란다.
정치는 ‘깨어있는 시민’의 권리다.

<서봉주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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