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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스 칼럼
 
작성일 : 16-10-01 01:17
리틀로칼럼-새로운 관계
 글쓴이 : 코리안저널
조회 : 4,774  

부자지간(父子之間)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엡6:1)

미국 살다 보면 고향이 그리울 때가 있다. 지난 주와 같이 명절이 있는 주는 더욱 그렇다. 고향이 그리운 것은 무엇보다도 가족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남북으로 가족이 나뉘어 사는 사람들은 오죽하랴.  이들 이산 가족의 소원은 잘 살고 못 살고는 두 번째요, 죽기 전에 한번이라도 그리운 가족을 만나보는 것일 것이다. 사람들은 수 많은 관계를 맺고 살지만, 그 중에서도 혈육의 관계는 더욱 그립다. 더구나 부모 자식간의 관계는 남 다르다. 그래서 동서 고금을 막론하고 부모에 대한 자녀의 관계를 인륜으로 정하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부모자식 간의 관계도 예전 같지는 않다.
 
치매에 걸린 아버지가 창가에 서서 나뭇가지에 앉아있는 까치를 바라 보다가 방에 있던 아들에게 물었다. “얘야 저 새가 무슨 새냐?” 아들이 대답했다. “까치요.” “응 그렇구나” 조금 후에 아버지가 아들에게 다시 묻는다. "얘야 저 새가 무슨 새라고?” “까치라고 했잖아” “참 그렇지~ 까치지… 알았다.” 잠시 뒤에 아버지가 다시 물었다. “얘야 저 새가 무슨 새라고 했지?” 아들은 소리를 버럭 지르며, “까치라니까요… 까치…” 그때 밖에 있던 어머니가 두 사람의 대화소리를 듣고 방으로 들어 와 아들에게 말했다. “얘야 네가 어렸을 때는 아버지에게 ‘아빠 저 새가 무슨 새야?’ 하면서 100번도 더 물었단다. 그때 마다 네 아버지는 끝까지 다정한 목소리로 ‘얘야, 까치란다’하시며, 묻는 너를 귀여워 까지 하시며 네 머리까지 쓰다듬어 주셨지. 그래서 네가 말을 배울 수 있었던 거란다.”

신약성경 에베소서에 보면 부부간의 관계, 부모 자식간의 관계, 주인과 일꾼의 관계 등, 새로운 관계를 설명하고 있다. 이 새로운 관계를 설명하면서 등장하는 단어가 바로 ‘순종’이다. 자식으로써 부모에게 해야 하는 도리도 바로 다름 아닌 순종(Obedience)인 것이다. 이 순종은 아내가 남편에게 행하는 순종과는 다르다. 아내의 순종은 자신을 보살펴 줄 책임이 있는 남편에게 자발적으로 자신을 주는 사랑에 대한 반응이라면, 자녀가 부모에게 하는 순종은 부모의 권위에 대한 자녀의 마땅한 도리이기 때문이다. 그럼, 자녀가 부모에게 마땅히 순종해야 하는 근거를 성경은 어떻게 말하고 있나 살펴보자.

첫째 그것은 본성이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6장 1절에서 그것은 ‘옳은 일’이라고 설명한다. 여기서 ‘옳다 (dikaios)’ 는 말은 ‘의롭다’는 말이다. 이것은 기독교윤리뿐 아니라, 모든 사회에서 표준이 되는 규범이다. 즉 특별계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모든 인간의 마음에 새겨 넣으신 자연법인 것이다. 그래서 이것은 당시 헬라 뿐 아니라, 로마의 이교 윤리학자들도 가르쳤다고 한다. 공자도 중국은 물론, 한국과 일본에 까지 많은 영향을 주었다.

둘째 그것은 율법이다. 성경의 십계명 중 5번째 계명을 보면 ‘부모를 공경하라’고 명령한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출20:12) 이렇게 부모를 공경하는 일은 하나님에 대한 의무다. 즉 부모의 권위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으로 율법으로 정하고 있다. 그러나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은 자녀에게 있어 짐이 아니라 축복이다. 부모를 공경하면 이 땅에서도 장수의 복을 받기 때문이다.

셋째 그것은 복음이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창조하시고 '심히 좋았더라'(창1:31)고 소감을 말씀하셨다. 그러나 인간의 불순종과 이기심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는 여지없이 깨지고 말았다. 그러나 이제는 새롭게 예수님의 화목사역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관계가 시작되었다. 즉 복음의 시대, 사랑과 평안의 시대가 열렸다. 그러므로 부모에 대한 순종도 마지 못해 권위에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주 안에서 기쁨으로 감당하게 된 것이다. (엡6:1) 즉 내 안에 복음이 임할 때 부모에 대한 효심(孝心)도 깊어진다.

클 때는 혼자 큰 줄 알고 부모를 귀히 여기지 않다가도 부모님께서 돌아가시면 왜 생전에 용돈이라도 자주 드리지 못했는지 후회하는 것이 또한 자식이다. 사람을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지만, 태어나서 3년은 먹여 줘야 하고 3년 동안은 대소변도 가리지 못하는 존재가 인간이 아닌가? 이런 수고를 마다치 않으신 부모님을 섬기는 일은 하나님의 뜻이요, 축복된 삶의 원천이다. 아직도 부모님께서 생존해 계시다면 축복의 기회를 놓치지 말라. 부모님은 생전에 섬겨 드려야 한다.

김상수목사, 프리스코한인교회 담임, 글로벌침례신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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