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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스 칼럼
 
작성일 : 17-01-07 03:46
조이풀 컬럼- 성경의 어려운 이야기 5
 글쓴이 : 코리안저널
조회 : 4,426  

물 가운데 궁창이 있었다니?

하나님이 둘 째날에 하늘을 만드셨다. 창세기에서 말하는 하늘은 무엇일까. 개역 성경에 ‘궁창’으로, 그리고 개정판에는 ‘창공’으로 번역된 히브리 말 ‘라키아’의 뜻을 한 번 생각해보도록 하자. 이 말을 영어로 옮긴 이름인 ‘퍼머멘트’(firmament)는 라틴어 성경 벌게이트(Vulgate) 속의 ‘피르마멘툼’(firmamentum)에서 왔다. 이 말은 ‘광활한 공간’이라는 의미이니, 땅 위 쪽으로 펼쳐져있는 넓은 하늘 공간을 뜻하는 것이다. 하지만 무엇으로 번역이 되었든지, 히브리말 ‘라키아’의 원래 의미는 그냥 공간이 아니다. 이 말은 놀랍게도 딱딱한 물질로 되어있는 둥근 형태의 지붕을 뜻한다. 오늘 날 하늘은 그냥 공간일뿐, 그것 자체가 어떤 존재는 아니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실제 하늘은 비어있지 않으며, 공기로 채워져 있다. 1640년에 토리첼리(Torricelli)라는 학자가 공기의 무게를 재는데 성공했다. 압력계를 만들어서 무게를 재었더니 놀랍게도 바늘이 움직이더란다. 그래서 ‘토르’ (torr)라는 대기압의 단위가 생겼다. 무게가 있으면 존재가 있는 것 아닌가. 우리 눈에서나 기체와 고체가 달라 보일 뿐이지, 따지고 보면 존재의 본질적인 면에서는 그게 그거다. 이런 차원에서 보면, ‘라키아’를 존재감 있는  고체로 표현한 창조기사는 결코 신화가 아니라, ‘완전’ 사실일 수 밖에 없다.

고대 히브리 사람들은 하늘을 하나님이 천장을 땅 위에 씌워 놓으신 것이라고 생각했다. 천장에 조명을 달듯이 하나님이 거기에 해도 다시고 별도 채워 넣으셨다고 생각했다. 욥기 26:7을 보면, 하나님이 “북편 하늘을 허공에 펴시며 땅을 공간에 다시며”라는 표현이 있다. 비어있는 공간에 무엇을 매다는 기술은 오늘 날의 첨단 기술로도 가능하지 않다. 덜덜 떨어대는 큰 발전기를 건물에 매다는 것도 초일류 기술인데, 하나님이 아무런 고리 없이 빈 공간에 땅을 매다셨다면 이건 더 말할 것이 없다. 땅은 그렇다 치고, 북쪽 하늘은 어디에 펴셨는가. 태초의 허공(토후 empty space)에다 펼치셨다. 이 허공이 말하자면 우주이고, 북쪽 하늘(차폰)은 궁창에 해당한다고 보면 딱이다.

더 흥미로운 것은 궁창의 자리이다. 놀랍게도 하나님은 물을 양쪽으로 나뉘도록 댕강 자르시고, 그 중간에 궁창을 박아 넣으셨다. 그리고는 아래 쪽의 물은 강과 바다가 되어 땅을 흐르게 하셨고, 그 위의 물은 하늘 위에 쟁여놓으셨다. 그러니 궁창 위에는 커다란 저수지가 하나 있는 셈이다. 그뿐이 아니다. 저수지와 함께 바람 창고와 우박 내지는 눈 창고도 거기에 지으셨다. 창세기를 7장부터 읽어보면, 노아의 홍수가 일어났을 때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들이 열려”(창 7:11). 이 표현은 궁창 아래의 물(깊음의 샘)이 터짐과 동시에 궁창 위의 물이 거기에 나 있는 창문(하늘의 창)을 통해 땅으로 떨어지는 현상을 나타낸 것이다. 우리야 머리 위로 떨어지는 빗물의 정체에 대해서 의문을 품지 않지만, 고대 히브리인들은 그것을 상당히 신기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이것도 조금만 생각을 넓혀보면 별 문제가 없다. 발전적으로 이해하자면, 대기 속에 섞여서 비를 만드는 수증기 구름이야 말로 거대한 하늘 위의 저수지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생각해보면 참으로 오묘하고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인간은 스스로를 굉장히 잘났다고 생각하고, 우주를 보는 과학적인 인식만이 무조건 옳은 것이라고 착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우주를 지으신 하나님은 사람의 생각과 지식 위에 존재하신다. 과학적 방법으로 그 분의 존재와 흔적 모두를 증명할 수 있다는 것은 너무나 낭만적인 이야기일 뿐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증명이 아니라, 경탄과 예배이다.

이 말씀과 연결해서 신약의 한 부분을 생각해보자. 이른바 ‘셋째 하늘’ 이야기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그는 십사 년 전에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고후 12:2). 소위 삼층천이란 곳에 바울이 다녀왔다는 거다. 고린도후서를 쓰기 십사 년 전에 생긴 일이니, 아마도 그가 주후 55년 경에 길리기아 다소로 피신했을 때의 일로 보인다. 사도바울이 유대인과 기독교인 양쪽에서 핍박을 받아 너무 지쳐 있을 때 하나님이 그를 치료하신 사건이다. 하나님이 사람을 쓰시기로 작정하시면 무엇이든지 하실 수 있으니, 사건의 진위여부는 무조건 논외다. 시기 보다는 셋 째 하늘이라는 장소가 궁금하다. 쉽게 말해서 지붕 아래의 물이 있는 공간은 일층천이다. 요한계시록에서 하나님의 천사들과 사탄이 한판 붙는 곳이다. 그리고 지붕 위의 물이 있는 공간은 이층천이다. 삼층천은 어딘가. 물리적인 공간이 아니라, 하나님이 계시는 가장 높은 영적인 공간(the highest, spiritual heaven)이다. 바울이 그의 글에서 다녀 왔노라고 콕 집어 말한 곳이 이곳이다. 

창세기 본문과 연결해서 이런 말을 하는데는 이유가 있다. 유대인들이 하늘을 이렇게 셋으로 구분해서 불렀기 때문이다. 이 셋 중에서 우리 주님께서 부활하셔서 올라가신,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공간이 바로 셋 째 하늘이다. 물론 바울은 다녀 왔다니 그런줄 알아야 하겠지만, 누구든지 바울을 흉내내서 나도 거기 갔다 왔다고 하지는 않기를 바란다. 신약학자 폴 바넷(Paul Barnett)은 그의 주석에서 이 사건을 ‘입신’(유체이탈)이 아니라, 일종의 ‘휴거’(rapture)와 같은 사건이거나 또는 ‘환상’(vision)을 본 것으로 해석한다. 본문에서 “이끌려 갔다”(하르파조)는 표현은 “강력한 외부의 힘에 붙들린” 상태를 뜻한다. 하나님이 바울을 직접 하늘로 데려가서 그곳을 보여주셨거나, 아니면 요한에게 하셨던 것처럼 환상을 보여주신 것으로 이해함이 옳다는 것이다. 하기는 구약의 에녹처럼 사람이 그냥 하늘로 올라간 경우도 있고, 또 환상을 본 사람이야 성경 속에 부지기수이니, 이런 일도 신앙 안에서 얼마든지 생길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 결코 소위 ‘입신’은 아니다. 이 현상은 ‘완전’ 다르다. 성경이 아예 말하지도 않을뿐 더러, 정신이 육체를 벗어나서 안드로메다로 가버리는 상태이기 때문에 위에 언급한 것과는 본질 자체가 다르다. 주변에서 듣자하니 샤머니즘 안에는 ‘영혼’이 막 날아다니는 그런게 있다고 하더라. 안그래도 신사도를 포함해서 샤머니즘의 영향을 받은 별 희한한 성령운동이 다 있어서 성령님이 속상해하실 것 같다. 그런 일에 한 눈 팔지 말자. 신기한 것은 그냥 한번 신기하고는 끝난다. 그런건 진리가 아니다. ‘신기’가 아니라 ‘진리’를 따라야 한다. ‘신기’를 받으면 무당이 돼서 굿이나 하면서 먹고 살아야 한다. 이 혼란한 세대에 하나님을 바로 믿는 것이 진정한 복이다.


글쓴이 : 김세권 목사 / 한국의 장로회 신학대학과 미국의 Hebrew Union College 에서 수학했으며, 현재 달라스에서 조이풀 교회(www.joyfulkcc.com)를 섬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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