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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스 칼럼
 
작성일 : 17-03-21 00:42
조이플 칼럼-덩치가 크면 좋은 교회인가?
 글쓴이 : 코리안저널
조회 : 8,103  

여러분들은 신발을 신을 때에 어느 쪽부터 신는가? 16세기의 유대 율법서 해설집인 ‘슐칸 아루크’ (Shulchan Aruch)를 읽으면, 유대인은 반드시 오른쪽 신발부터 먼저 신어야 했다. 그렇긴해도 끈을 매는 순서는 달랐다. 왼쪽신발의 끈부터 잡아당기는 것이 율법적으로 바른 순서였다. 벗을 때는 또 달라서 왼쪽 신발부터 벗어야 했는데, 그 이유는 그들의 오른쪽 선호사상 때문이었다. 오른 쪽이 왼쪽보다 중요하다고 믿었기 때문에 그들은 오른 발을 먼저 신 속에 담아서 보호해야 했다. 끈으로 묶는 것은 발을 답답하게 만드는 것이니, 왼쪽부터 묶었다. 보호로부터의 해방은 덜 중요한 왼쪽발이 우선이었다.

이렇게 독하게 율법을 지키는 사람들이 바로 유대인들었다. 이런 유대인들이 “와, 대단하다”고 칭찬을 한 대상이 있다면, 그들은 과연 누구일까. 사도행전 5장을 읽어보면, 이 지독한 율법쟁이들이 칭찬한 사람들은 다름 아닌 기독교인들이었다. 사도들이 전한 복음을 받아 들이고 솔로몬 행각에 모인 사람들을 향해서 당시의 유대인들이 ‘메갈루노’(μεγαλύνω) 했다. ‘칭찬했다’는 말이다. 이 단어에 ‘메가’(mega)가 붙었으니 엄청나게 칭송했다는 말이겠다. 처음 기독교인들이 이렇게 칭찬을 받은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말할 수 있는 것이 사도들이 행한 표적과 기사 때문이었다. 헬라어 ‘세메이온’ (σημεῖον)은 초자연적인 것을 가리키는 단어다.

사도행전에 드러난 기적의 내용은 주로 병고침이었다. 2,000년 전의 팔레스틴에서 병을 고치는 것은 당연히 기적이었다. 그렇다면 항상 기적의 내용은 병고침이어야만 하는가. 그건 아니다 싶다. 기본적으로 ‘세메이온’의 성격은 “어떤 사람의 인격이나 하는 일이 다른 것들과 구별되는 것”에 있다. 내용보다는 “다름”이라는 성격이 중요한 것이다. 시대마다 기적의 성격이 달라질 수는 없다. 그러나 그 내용은 변할 수 있다. 아마 오늘 날의 의사들을 신약시대의 유대 땅으로 파송한다면, 이들은 기적을 행하는 위대한 사람들로 불리웠을 것이다.

오늘 날의 의술은 옛날에 비해서 기적이라고 일컬을만큼 발전했기 때문이다. 상전벽해(桑田碧海)라는 말이 있다. 뽕나무 밭이 시퍼런 바다로 변한다는 말이다. 이쯤이면 엄청난 기적이다. 그런데 이런 기적은 오늘 날의 건설회사들이 이미 오래 전부터 다 하는 것들이다. 얼마전에 다녀온 두바이에서 ‘부르즈 할리파’를 보면서 놀랐던 기억이 난다. 그 높은 건물을 사막 위에 세웠기 때문이다. 삼백년 전만 해도 인류는 비행기를 꿈도 꾸지 못했다. 하늘을 나는 것은 기적이었다. 하지만 오늘 날은 비행기를 기적으로 부르는 사람이 없다. 휴대 전화기도 마찬가지다. 누가 매일 전화기를 쓰면서 “기적이야”라고 감탄하는가. 기적의 내용은 세월을 따라 변한다. 그래서 오늘의 우리에게 정말로 필요한 기적은 그 때와는 또 달라야 한다.

이 시대에 진정으로 의미있는 기적이 있다면, 그것은 사람의 심령이 달라지고 변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불변하시는 성품”을 닮아서 잘 변하지 않는다는 우스개가 있다. 이런 사람들이 변해서 겸손해지고, 배려와 관용과 이해가 넘치는 인격으로 변한다면, 곧 교회가 변하는 것이고, 이것이 사람들의 칭송을 받을 수 있는 기적이 아니겠는가.

사도들로부터 촉발된 변화의 구체적인 모습은 솔로몬 행각에 모인 사람들의 삶에서 구체화 되었다. 12절의 문장은 유대인들이 칭송한 것이 거기 모인 기독교인 공동체였다는 것을 문맥에서 보여준다. 예수 믿겠다고 손을 번쩍 치켜들고는 집에 돌아가서 어제와 같은 삶을 산 것이 아니었다. 거기 모여서 삶의 변화를 실제로 실천했기 때문에, 그 독한 유대인들로부터 칭찬을 들은 것이었다. 유대인들은 기독교인을 “상종하지 않았다”고 했다. 한국말로는 어감이 부정적이지만 헬라어 원문의 내용은 사뭇 느낌이 다르다. ‘상종하다’는 말은 “서로 붙어 지내다”(glue together, cement together)라는 의미다. 그들이 감히 그렇게 할 수 없다고 말한 이유는 바로 “다름” 때문이었다. 형편 없어서 상종 못하는 것이 아니라, 너무 훌륭해서 감히 같이 붙어 지낼 수 없다고 말한 것이다. 이쯤 되면 그들의 삶의 변화가 어떤 것이었는지 짐작이 간다.

지난 3월 11일 새벽에 한국 장로교단의 대표격인 명성교회가 은퇴한 김삼환 목사의 아들이 담임으로 있는 새노래 명성교회와 합병을 결의했다는 기사가 기독교 매체들에 실렸다. 아버지가 목회하는 교회의 돈으로 아들에게 새교회를 차려 준 것만 해도 부끄러운 일인데, 이번에는 변칙 세습을 위해서 합병을 결의했다. 다른 말은 할 필요가 없다. 이쯤 되면, 경영권의 세습을 위해서 온갖 변칙을 저지르는 세상의 기업과 교회가 다를 것이 하나도 없다. 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칭찬은 커녕 욕먹기 딱 좋게 생겼다.

교회는 땅을 사서, 건물을 크게 짓고, 사람을 모여들게 하는 곳이 아니다. 창 11장에서 “흩어짐을 면하기 위해” 바벨탑을 쌓은 사람들의 결과가 어떠했는지 우리는 이미 안다. 하나님은 창1장에서 사람을 지으시면서,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복을 주셨다. 땅에 흩어지라고 하신 것이다. 이른 바 “선교적 교회”(missional church)의 사명을 이미 태초에 주신 것이다. 그런데도 오늘 날의 교회는 사람을 많이 모으면 훌륭한 교회이니, 그러기 위해서 온갖 프로그램으로 교회를 채우고, 땅을 매입해서 넓은 주차장을 자랑하며, 높은 건물을 세우는데 혈안이 되어있다. 과연 그런 교회들이 교회이긴 한 건가. 성경의 대답은 ‘아니다’이다.

교회는 뭔가를 세워서 그 공로를 다른 사람들에게 자랑하거나, 또는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서 가는 곳이 아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사람’이, ‘내가’ 변하기 위해서 가는 곳이다. 이것을 잃어버리면 그것은 사람의 집단이며, 결코 ‘에클레시아’(ἐκκλησία)일 수 없다. 신약에서 사도바울과 바나바를 파송한 안디옥 교회는 무려 340년을 지탱했다. 예루살렘 교회 다음으로 에클레시아로 불린 이 교회에 관해서 성경은 숫자와 프로그램을 언급하지 않는다. 단지 바울이 그들을 말씀으로 가르쳐서 사람들이 훌륭했다는 내용만 기록되어있을 뿐이다.

달라스에는 작은 교회들이 많다. 얼마 전에 그 교회들이 모여서 “달라스 목회 공작소”라는 모임을 만들었다. 출석하는 교인들이 100명이 넘는 교회는 회원이 될 수 없다고 한다. 이 교회들이 올 여름에 작은 교회의 청소년들을 모아서 수련회를 한다고 한다. 교회의 청소년 숫자가 몇 없으면 독자적으로 그들에게 수련회를 통한 교육의 기회를 제공할 수 없는 것은 불문가지다. 바로 이들을 모아서 함께 수련회를 한다는 취지이다. 이를테면 이런 종류의 일이 사실은 교회를 살리는 몸짓이다. 자신의 덩치를 크게 만들고 세를 불려서 자기 자랑을 하려는 교회들만 이곳에 있다면, 달라스의 복음화는 기대할 수 없다.

교회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각이 무엇보다 달라져야 한다. 아무리 큰 덩치에 좋은 설비를 갖추었어도, 생명의 능력이 없다면 어찌 교회일 수 있겠는가. 달라스에는 크기보다 살아있는 생명으로 가득찬 교회들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선교적 교회로서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고, 말씀을 따라 살아서 삶의 변화를 목적으로 하는 작고 건강한 교회들이 이 땅에 일어설 때에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을 것이고, 이 곳의 복음화가 한 걸음 더 앞으로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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