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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스 칼럼
 
작성일 : 17-04-08 10:14
인카운터 칼럼-제목: “피해자인가? 가해자인가?”
 글쓴이 : 코리안저널
조회 : 4,359  

캘리포니아 국제 순복음 금식기도원에서 2주간동안 기도하는 시간을 가진 적이 있었다. 어느 늦은 밤 주님 앞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 있는데…이런 고백이 갑자기 터져 나왔다. “주님, 나는 더는 목사가 아닙니다.” 갑작스러운 이런 고백에 나도 잠시 놀랬지만… 이어서 기도가 계속되었다.

“주님, 목사가 이렇게 힘들어해서야 어떻게 희망과 소망의 주님을 전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늘 힘들다. 어렵다. 못하겠다. 늘 불평불만으로 가득 찬 사람인데 어떻게 그런 자가 목사일 수 있습니까?” “그래 난 더는 목사가 아니야, 아니야…” 마치 세상 다 산 사람처럼 자신에 대하여 실망하고 넋두리하듯 했다.

그런데 비몽사몽 가운데 엎드려 꽤 시간이 지난 것 같다. 갑자기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 “네가 그토록 힘들고 어려워하고 불만이 많은 것은 다름 아닌 네가 살고자 하니까 그렇지 않으냐. 죽어… 네가 죽어야 네가 살지 않겠니?” 이것은 다름 아닌 너무나 뚜렷한 하나님의 음성이었다.

신앙생활이란 내가 죽어야 한다는 것은 늘 들어왔고 당연히 알고 있는 말인데도 그것이 이토록 강렬하게 다가온 것은 처음이었다. 마치, 암흑의 세계에서 저 멀리 비쳐오는 강렬한 한 줄기 빛이 나의 가슴을 뚫는 느낌이랄까?

그 경험 이후에 죽는다는 것에 대하여 고민도 해보고 여러 책을 읽었다. 그리고 깨달은 것은 죽음은 늘 타인과 관련이 있었지 나와 관련이 없었다는 사실을… 죽음은 승리가 아니라 늘 무기력하고, 무능력하고, 실패라는 사실을… 죽음은 기쁘게 받아들여야 할 대상이 아닌 두려워할 대상으로… 지금까지 생각해 왔다.

존 스토트는 그의 “제자도”에서 생명을 얻는 죽음에 대하여 이렇게 말한다. “그것은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므로 ‘죄’에 대하여 죽은 것이고, 그리스도를 따름으로 ‘자아’에 대하여 죽는 것이고, 자기 마음대로 편안하게 살고 싶은 ‘욕구’에 대해 죽는 것이고, 박해와 순교를 경험하며 ‘안전’에 대하여 죽는 것이고, 우리의 궁극적인 영생을 위하여 이 ‘세상’에 대하여 죽는 것이다.”

내가 왜 힘들어할까? 내가 왜 어려워할까? 내가 왜 불평불만이 있을까? 이 질문들의 답은 다름 아닌 내가 살고자 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내가 살고자 애쓰면 애쓸수록 마치 늪 속에서 살고자 발버둥 치면 더 깊은 곳으로 빨려 내려가듯 더 깊은 좌절과 절망의 늪 깊은 곳으로 내려갔다.

지난 목회와 신앙을 돌아보며 결국 내가 살고자 몸부림치면 칠수록 더 힘들어했던 자신을 발견한다. 주위 사람들 간에 “왜 늘 내가 피해자인가?” 이 질문이 주를 이룬다. 자신이 주위 사람들로부터 피해자가 되는 순간 좌절과 절망과 슬픔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제는 피해자 신앙에서 벗어나야 한다. 내가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순간 주위 모든 사람은 가해자가 되어 나를 힘들게 하는 주체가 된다. 하지만 나는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임을 알아야 한다.

그렇다. 나는 늘 십자가 앞에 나아간다. 나는 늘 예수님 아니면 안 되는 예수님이 모든 것이자 최고인 믿음을 갖고자 몸부림치려 한다. 그러면 어느 순간 가해자가 되어 있는 나의 모습을 발견한다. 다른 사람들을 볼 필요조차 없이 내가 죄인 중에 괴수이고 내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원흉임을 다시 깨닫는다.

내가 가해자인데 어떻게 다른 사람을 미워할 수 있겠는가? 내가 가해자인데 어떻게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내가 가해자인데 어떻게 다른 사람을 내 칠 수 있겠는가? 모든 문제의 원인이 자신인데 주위 사람들과 환경을 어떻게 탓할 수 있느냐 말이다.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후4:10,11). 그러므로, “내가 살고자 한다면 먼저 죽어야 한다.”

윤정용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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