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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스 칼럼
 
작성일 : 17-04-15 04:53
조이플 칼럼-작아도 할 건 다 한다
 글쓴이 : 코리안저널
조회 : 7,038  

한국에 ‘신병철’이라는 분이 있다. 그에게는 “통찰의 체계를 만들고 전파하는 일을 소명으로 삼고있는 사람”이라는 평가가 따라다닌다. 그가 쓴 책 “통찰의 기술”을 읽다가, 무릎을 쳤다. 원래 경영학적 기법으로 목회를 들여다 보는 것을 소위 ‘번영주의적 목회공학’으로 생각해서 별로 달가워하지 않으며 살아왔다. 그런데 방법론이 아니라, ‘통찰’이 무엇인지를 안다면 그건 교회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다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생각하는 ‘통찰’이란 건 뭘까? 통찰이란 “고정되어 있는 것,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공유해 의심할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을 완전히 새롭게 바라보는 인지적 행동”이란다. 통찰이 무엇인지를 알면, 그 다음으로는 어떻게 하면 자명한 사실을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 힘이 생길까 하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신병철은 세 가지를 주문한다. 첫 째는 표면 아래에 있는 진실을 발견하려는 노력이다. 진실을 발견했으면, 주변에서 뭐라고 하든, “아무리 뭐가 짖어대도 기차는 간다”는 차근차근한 노력이 필요하다. 두 번째로는 구체적으로 문제를 정의하는 것이다. 이것은 ‘결핍’을 느끼는 것에서 출발한다. 뭔가 잘못되어 있다고 생각하면 그게 바로 결핍을 인지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결핍을 발견했으면, 내적 동기를 가지고 몰입해야 한다. 의도만 가지고는 구체적인 실천을 할 수 없다. 이것이 담보되려면, 거기에 모든 것을 걸고 몰빵하는 집중력이 필요하다. 맞는 이야기다. 진실로 무엇인가 원하는 사람은 몰입할 수 있다. 진정한 개혁은 이런 데서 나온다.

올해는 종교개혁 5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사방에서 난리가 났다. 행사 소식도 무수히 들려온다. 그런데 귀를 기울여 보면, 무엇을 실제로 해야 하는 지에 관한 이야기는 별로 없다. 좀 미안한 말이지만, 그냥 때가 됐으니 행사를 해야 뭔가 뒤지지 않는 것 같아서 열심을 내는 것 정도로 보인다. 물론 그 반대로 어떤 의도를 가지고 아예 판을 뒤집어 보려고 작심하는 것 또한 역사를 대하는 태도로는 정직하지 않다. 그건 역사의 발전이 아니라 퇴행이니 말이다. 며칠 전에 은사이신 서정운 목사님(장신대 명예총장)이 정말 ‘힛트’라고 할만한 문자를 보내주셨다.

스위스의 촌 동네인 자펜빌에서 목회하던 목사인 칼 바르트(Karl Barth)는 자유주의 신학과 결별하고 신정통주의의 문을 연 위대한 학자이다. 그는 학위도 없었지만, 나중에 본대학교에서 신학을 가르쳤다. 바르트가 “로마서 강해”를 집필한 후에 이름이 상당히 알려지게 되었는데, 자신은 정작 이걸 어떻게 생각했을까? 서목사님은 바르트 자신이 생각했던 바를 그가 쓴 책(How I changed my mind?)의 내용으로 설명하셨다. 받은 문자를 그대로 옮겨보자. “바르트 목사님이 종탑 계단을 올라가다 발을 헛디뎌 엉겁결에 줄을 잡았는데, 종이 울려 놀란 사람들이 마당에 다 모였다”고 한다. 그가 목회하면서 고민했던 것, 자유주의 신학의 일탈에 대해서 느꼈던 것이 로마서 주석을 통해서 터져 나오자, 의도하지 않게 큰 변화가 생겼다. 통찰을 통한 결핍의  발견과 그 과정 속에서의 몰입이 쌓여서 이리 결과된 것으로 설명하면 어떨까.

‘스톰레이크 타임스’라는 형편무인지경으로 작은 동네의 신문사가 있다. 동네는 아이오와 주에 있는 한적한 스톰레이크시이고, 신문사는 역시 동네 이름을 딴 별볼일 없는 곳이다. 그 도시에는 사람이 약 만명 정도 사는데, 그곳에서 이 신문사는 일주일에 두번, 기껏해야 3,000 부 정도의 신문을 발행해왔다. 놀랍게도 이 신문사가 올해 미국 언론계의 최고 영광이랄 수 있는 퓰리처 상 사설 부문을 수상했다. 이 신문사는 국장의 형이 발행인이며, 아내가 사진기자, 아들이 취재기자로 일하는 총 직원 10명의 ‘미니 언론사’다. 신문사는 지역정부와 농업기업협회의 유착 관계를 끈질기게 취재해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컬런 국장은 “유수의 대형 언론사 사이에서 퓰리처 위원회가 작은 언론사의 노력을 알아줘 자랑스럽다”는 말로 소감을 대신했다 (동아일보, 한기재 기자).

문제를 찾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결핍을 느끼고, 그리고 몰입을 통한 통찰로 엄청난 결과를 일구어 냈다고 이 일을 평가하면 어떨까. 작으면 어떤가. 우리 동네의 여러 신문사도 이 정도 규모일 것으로 짐작(?)한다. 그렇다면 이 동네의 신문사 가운데 다음에 이런 영예를 안을 곳이 있기를 기대해도 좋겠다. 큰 대형 신문사만이 반드시 사고를 치는 것은 아니다. 작아도 할 건 다할 수 있다.

문득 교회도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교회의 성장에 대해서 고정된 ‘통념’이 있었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교회가 성공한 교회이고, 또 많이 모이려면 건물과 주자창, 거기에 체육관 정도는 내세워야 한다고 사람들이 믿었다. 규모가 큰 교회는 장점이 많다. 커다란 자기 건물이 있으니 마음껏 모여서 행사를 할 수 있다. 조물주 위에 있다는 건물주 눈치를 안봐도 좋다. 거기에 차를 세우는 것도 편하다. 타고 내릴 때마다 마음이 ‘프라이드’로 채워진다. 여러 행사를 할 때도 편하게 할 수 있다. 동네 사람들이 물으면, “이런 교회”를 나간다고 그저 자부심을 가지고 대답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런 장점 뒤에서 결핍을 느끼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가고 있다. 아무리 살펴봐도 너무 커다란 탓인지 교인들 간에 관계가 제대로 형성되질 않는다.

목사님들이 아무리 애타게 복음의 진수를 부르짖어도, 그게 꼬리까지 내려오는데 시간이 걸린다. 그래서인지 복음보다는 사교와 인간관계에 더 집중하는 모습도 간혹 보인다. 교회건물의 관리적인 측면도 그렇다. 한 마디로 쓸데없는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간다. 거기에 투자하는 돈을 한인사회의 구성원들을 위해서 쓰면, 그렇게 원하는 전도가 저절로 이뤄질 텐데, 돈이 방향을 잘못 찾는다. 이런 결핍들이 진지하게 예수를 믿으려 하는 사람들에게는 상처가 된다. 제대로 믿고 싶은데 그게 채워지지 않으니 힘들게 신앙생활한다.

이런 결핍을 느낀다면, 몰입을 통한 통찰이 당연히 필요하겠다. 통찰을 통해 생각을 바꾸면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인다. 작지만 신학적으로 건강한 교회들은 어떤가. 재물과 건물은 없지만, 그 대신 관계가 살아있다. 소위 “하나가 된다”는 말이 더이상 낯설지 않게 된다. 담임목사가 구경 대상인 연예인이 아니라, 교인들을 일대일로 목양하는 사람이다. 따라서 말씀을 깊이 공부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규모가 작으니 빨리 빨리 움직인다. 무엇보다도 건물구입이나 관리에 돈을 쓰지 않으니, 교회가 받는 재정적 압박이 없다. 예산은 크지 않아도, 필요한 데만 돈을 쓰니 복음을 위해서 해야 할 일들은 다 한다. 숫자가 많아져서 덩치가 커지면 나누면 된다. 이쯤이면, 우리가 통찰을 통해서 교회의 결핍을 해소하는 것이 이론적인 것만은 아니다 싶다. 댈러스가 진정으로 복음화 되고, 사람들이 다시 교회로 돌아오려면, 작고 건강한 교회들이 일어설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결핍을 느끼는 사람들이 그 대열에 합류해서 이런 교회 운동에 참여해야 한다, 롸잇 나우!

물론 큰 교회는 좋지 않다는 일반화의 오류에 빠지고 싶지는 않다. 깨어있고 건강한 커다란 교회는 나름대로 할 일도 있고, 또 제대로 한다면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이다. 문제는 지금까지 이런 통념에 근거한 교회 성장이 한계에 도달했다는 점이다. 긱섬주식회사를 만들어 인디언 선교와 비즈니스를 겸하는 김진수 장로님이 이런 말을 했다. “왜 실망하나? 하나님의 꿈이 아니라, 내 꿈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꿈은 그리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왜 교만하나? 하나님의 꿈으로 포장한 나의 꿈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결과를 보면 하나님의 꿈인지 나의 꿈인지 알 수 있다.” 와아! 말로하는 종교개혁이 아니라, 진짜 작은 개혁이 우리 안에 이뤄지려면, 이런 말로부터 시작하는 건 어떨지 싶다. Soli Deo Gloria!

글쓴이 : 김세권 목사 / 한국의 장로회 신학대학과 미국의 Hebrew Union College 에서 수학했으며, 현재 달라스에서 조이풀 교회(www.joyfulkcc.com)를 섬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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