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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스 칼럼
 
작성일 : 17-05-13 04:09
목사님, 실망했어요
 글쓴이 : 코리안저널
조회 : 75  
“목사님, 잠시 뵈면 좋겠습니다.”
안면이 조금 있었던 분인데 만나자고 연락을 해 왔다.
무슨 말을 하시려나 궁금하기도 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다소 걱정도 되었다. 그 분의 성향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 분은 과거에 교회에서 상처를 받고 교회를 떠났다. 그리고 이 교회 저 교회를 전전하다가 지금은 재충전(?)을 위해서 교회를 잠시 쉬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하는 분이다.

과거 교회에서 받은 상처가 지금의 그의 정신과 영적인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나누는 대화 마다 교회를 비판한다. 아니 좀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교회의 목회자를 비판한다.
이번에도 예상이 빗나가지 않았다. 목사를 향한 원한을 한층 더 무장 해서 왔다. 그리고 격한 반응을 토해낸다.

“목사님 앞에서 이런 말을 해서 죄송한데…
정말 요즘 목사들 문제가 많습니다.”

왜 하필 이런 이야기를 목사인 나에게 하는 걸까?
아는 사람이 교회에서 딸 결혼식을 했단다. 그런데 그 신부 측 부모가 목사에게 사례를 했는데 그 목사가 사양하지도 않고 받았단다. 그러면서 “받지 말아야 하지 않느냐?” “돈만 아는 목사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는거다. 그리고 교회 직분자에게 상처 받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이어서 한다.

자신의 일도 아닌 다른 사람의 문제들을 가지고  오늘날 교회의 문제점이라고 흥분해서 이야기하는 그를 보고 있으니 가슴이 저려온다…
모든 종교는 ‘나’로부터 출발한다.
내가 기도하고, 내가 정성을 보이고, 내가 헌신을 해야한다. 나의 정성과 헌신을 통해서 결국 신을 감복시켜 우리가 원하고 바라는 것을 얻는다. 그래서 뭔가 잘 안되면 정성이 부족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런 논리가 교회안에서나 믿는 성도들 중에서 은연중에 만연되어 있다.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가 그 사람의 신앙과 믿음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었다.
리더를 세우는데 있어서“주일 예배는 빠지지 않는가? 새벽기도를 잘 참석하는가? 헌금 생활은 어떤가?  거룩하고 흠없이 살고있는 자인가?”하는 것이 중요한 조건이 되고 있다.
이러한 조건들을 살피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거나 필요 없다는 것이 아니다. 이런 생각들이 결국 눈에 보이는 거룩함과 “나”중심의 신앙생활을 하게 하기 때문데 위험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는 예수님으로부터 출발한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내가 죄인이었지만 의로운 의인이 되었고(갈2:16),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무명한 자이지만 유명한 자, 죽은 자 같으나 살아 있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부요하게 되었다(고후6:9-10).

기독교인은 “예수님이 누구냐”에 촛점을 두어야 한다. 왜냐하면 예수님으로 인해서 우리의 정체성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것은 기독교의 핵심이 아니다. 어떻게 산다는 것, 좀더 정확하게는 어떻게 살게 되어지는 것은 예수님과의 관계의 결과물로서 열매로 주어지는 것이지 수단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을 빛내라고 성도로 불림을 받았다. 예수님께 우리를 빛내달라고 은연중에 요구하고 있다면 가슴을 찢고 회개해야한다.

교회 강단에서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느냐”가 우선이 아니라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가? 예수님과 나와의 관계는 어떤가 ?
예수님과 나와의 거리는 얼마나 되는가?” 가에 대한 말씀이 넘쳐야 한다.

직분을 뽑을 때도 “예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십니까?” 이 질문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예수님을 진정 사랑하면 주일성수하고 헌금생활하고 기도생활하는 것은 자연스럽게 따라오기 때문이다. 행동에 아직 부족함이 있다면 그것은 예수님을 향한 사랑이 아직 부족하기 때문이다.

믿는자는 의롭게 되어지는 것이 신앙생활의 목적이 되어서는 안된다.
예수님을 만나고 교제하고 친밀해지는 지는 것이 성도들의 신앙생활이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삶이 변화된다.  사람에게서 의로움을 요구하면 할수록, 교회는 오히려 위선적인 바리새인들을 더욱 양성하게 된다. 교회에서 부족한 사람들은 긍휼의 눈으로 보아주고, 내가 예수님과 깊고 바른 관계에 있는지를 점검하는 일에 힘을 쏟는 다면 신앙생활이 좀 더 자유로워 지고 여유있는 믿음을 갖게 되지 않겠는가?

“주님 한분으로 만족합니다.”

윤정용목사
달라스 인카운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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