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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스 칼럼
 
작성일 : 18-04-14 01:26
예수가 누꼬?
 글쓴이 : 코리안저널
조회 : 8,026  

예수가 누꼬?

Jeong Yong Yoon <yjy9757@gmail.com>
윤정용목사 <달라스 인카운터교회> 469-900-6884

경상도 할매 셋이 얘기를 나누는데 한 할매가
“어이 예수가 죽었단다”
다른 할매가 “와 죽었다 카드노?”
“못에 찔러 죽었다 안카나”
“어이구 머리 풀어 헤치고 다닐 때 내 알아봤다”
이때 암말 않던 할매가 “어이 예수가 누꼬?”
“몰라 우리 며눌아이가 아부지 아부지 케사이 사돈 어른인갑지 뭐“

이 유머를 처음 들었을때
배꼽을 잡고 한동안 눈물을 글썽이며 웃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난 후에
이 유머를 다시 접하고 드는 생각은
이것은 단순히 유머가 아니라
오늘날 현대에 살아가는 크리스챤들의 영적 현주소가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

“나는 죄인입니다”
“나는 예수님을 모르는 죄인중에 괴수입니다.”
한번은 기도중에 이런 기도가 뚝 튀어나왔다.
에이!  교회 다닌 년도가 몇갠데...
늘 주일설교시간마다 한번도 빠짐없이 언급하는 인물이 다름아닌 바로 예수님인데...
늘 말끝마다 기독교의 핵심이 
예수님이라고 그래서 그분만을 의지하고 믿으라고 힘주어 설교를 했는데...
그런 내가 예수님을 모르는 죄인 목사라니 ^^

꽤 오랫동안
하나님이 “나는 예수님을 모르는 목사입니다”로
회개를 시켰다.
처음에는 그 이유를 몰랐다가
나중에야 그 이유를 깨달았다.

기독교의 힘은 무엇일까?
왜 기독교는 망하지 않고 없어지지 않고
수천년동안 막을 수 없는 큰 강처럼 흐르고 있을까?
그 토록 기독교를 욕하고
온갖 수모와 핍박에도 ... 말이다. 

그것은 바로 “어떤 예수님을 만나느냐”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아는 것이다.

대개 믿음의 첫발을 내민 자들의 공통점은
의롭지 못하고 거룩하지 못해서
인생에서 실패하고
인생에서 좌절하고
인생에서 병들고
인생에서 고통을 느끼는 자들이다.

이들은 어떤 예수님을 만났을까?
올바르게 살라고 호통치는 예수님을 만났을까?
모든 환란과 고통은 너의 죄악 때문에
시작되었다는 말을 들으면서...

예수를 처음 믿게 된 자들은
세상에서 연쇄 살인범도 있고
더러운 아동 성 추행자들도 있고
끔찍한 강도와 사기를 저지른
뻔뻔한 자들도 있고
세상이 용서할 수 없는
부모를 죽인 자와 자녀를 굶주려서
패 죽인 자들도 있다.
도대체 이들이 만난
예수님은 누구일까?
세상이 욕하는 것보다
예수님에게  더 큰 욕과 책망을 듣고
비교할 수 없는 두려움과 무서움으로
인해서 기독교로 오게 되었는가?

그런데 말이다.
예수님은 사복음서에서
항상 종교지도자들에게 책망을 했지만
죄인들은 항상 불쌍히 여겨주시고 감싸주셨다.

왜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날 때에
눈물을 흐리며
왜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날 때에
위로를 받고 평안을 얻었는가?

반면에,
왜 예수님은
계명으로 나가는
거룩한 자들을 책망하시고

왜 예수님은
세리와 창녀들이
더럽고 추악한 죄인이지만
예수님 자신에게 나올 때에

왜 위로해 주고 왜 사랑해 주고 왜 품어주셨는가?

이 땅에 수많은 크리스챤들은 
예수님을 만났다. 그리고 지금도 앞으로도 계속해서 만난다.

이들의 공통점은
자신의 더럽고 추악한 큰 죄악에 대해서
세상은 돌을 던지고
세상은 죽으라고 강요하지만
이 죄인들은 예수님에게 나와서
위로를 받고
용서를 받고
사랑을 받았다.
그들이 연쇄 살인범이라고 할지라도
자신의 자녀를 굶겨서 패 죽인 극악무도한 자라 할지라도

예수님께 나와서
위로를 받고 불쌍히 여김을 받고
모든 죄 용서함을 받았다.

그때 이 죄인들은
예수님 앞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고
세상이 줄수 없는 평안과 사랑을 받았다.
세상은 더러운 죄인들을 향하여 죽으라고 비난하고 돌을 던졌다.

그러나
예수님은 어떤 죄인도 품어주고 용서해주고 오히려 격려하고 용기를 주고
영원히 살려주었다.

죄인을 향한
예수님의 사랑과 용서가
수많은 죄인들을 살렸고
죄인을 향한 예수님의 긍휼과 위로가
수많은 죄인들을 품어주었다.

예수님만큼 죄인을 사랑하고 죄인을 용서하고 죄인을 살려준 분은 아무도 없다.
전세계에 유일하게 죄인을 불쌍히 여기는 분이고 전세계에 유일하게 죄인을 위해서 죽으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시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를 보고,
오늘날 목사를 보면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죄인들을 계명으로 책망하고
성도들을 꾸짖고 야단치고
거룩하지 못한 죄인의 약점을 파고 들어서 무릎끓고 반성시키는 것이 교회의 목적인양 되었다.
아니, 좀더 구체적으로 목사의 사명이 되었다.

죄인들에게 엄한 계명을 요구하고
죄인들에게 계명으로 꾸짖고
저주하고 지옥으로 들어가도록 했다.

목회를 하면 할수록
죄인들을 책망하고 꾸짖고 야단치고
거룩하지 못한 약점을 파고들어서
무릎 꿇고 반성시키는 것이
목회를 잘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이왕 하면 잘 하자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실수하고 잘못하는 것을
눈뜨고 보기에는 인내심이 부족하다.
누군가가 실수를 하면 왜 실수를 할까?
누군가가 잘못을 하면 왜 잘못을 할까?
누군가가 일을 천천히 하면 왜 이렇게 느리게 할까?
이렇게 반사적으로 반응했던 자가 나 자신이었다.

그런데
어느날 기도중에
예수님이 나타나서
“윤목사, 네가 바리새인이다.”
“나를 핍박하고 나를 십자가에 달리게 한 장본인이 바로 너다.” 
“내가 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와서 십자가에 죽어야 했는지 진정 너는 모르는가?”
마치 사도바울이 처음 예수님을 만났을때 들은 음성을 들려주셨다.

그렇다.
나같은 죄인을 구원해주시고
이렇게 목사까지 만들어주신 것은
내가 잘해서, 모범이 되어서 그렇게 해 주신 것이 아니라 나를 불쌍히 여기시고 긍휼히 여기셔서
나를 선택해 주시고 나를 여기까지 오게 해 주셨다.
나의 의는 구원에 있어서 1%도 포함될 수 없다
그렇게 구원받아 목회하는 자가
이제는 성도를 정죄하고 판단하는 위치에 섰다.
이런 나를 예수님이 어떻게 보겠는가?

오늘날 교회와 목사의 문제는
다름아닌 ‘내 모습’이었다.
내가 예수님을 모른채 예수님을 전했고
내가 예수님을 모른채 예수님의 목사라고 생각했고
내가 예수님을 모른채 그분을 믿으라고 호통쳤다.

예수란 단어에
익숙한 것이 예수님을 잘 아는 것이 아니다.

예수를 자주 되뇌인다고
예수님과 관계가 깊은 것도 아니다.

예수님을 전한다고
예수님과 깊은 관계에 있다는 것도 큰 착각이다.

예수님은
내가 죄인이라고 고백할때
감동하시는 분이시다.
찾아오셔서 만나 주시는 분이시다.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불태어
그렇게 고백하는 자들을 위해서
죽으시고, 일하시고 그리고 그들을 위해서 역사하시는 분이시다.

이민생활이 녹녹치 않다.
힘들어서 다 내려놓고 싶은 분들이 많을거다.
자신이 얼마나 부족하고 연약한지
잘 해 볼려고 몸부림 치면 칠수록
모래늪에 빠져서 더 깊이 더 깊이 빨려드는 듯
피부로 느끼면서 죄절하고 절망한다.
목회하는 나 자신도 이런 생각 한두번 했겠는가?

그러나 괜챦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
죄인들과 연약한 자들을 위해서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이 땅에 와서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불태워서
구원하신 분, 그 예수님이 나와 함께 하시고, 그 예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 한... 말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내가 죄인입니다”라고
고백하는 사람들에게 엄청 감동하신다. 
이 고백은 전적인 예수님 중심의 신앙,
이 고백은 전적인 예수님이 모든 것임을 인정하는 신앙,
이 고백은 본업이 목회가 아닌,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알고, 예수님과 깊은 관계를 갖는 것임을 고백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주님, 나는 죄인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부르는 호출신호임을 꼭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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