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사소개 | 코리안저널을 시작페이지로
 
로그인 | 회원가입
클릭 클릭 많이 본 뉴스
  개인 세제 개혁
  햄버거 가게 매매
  피부에 좋은 음식
  앤디 워홀 작품 전시회 N…
  어스틴업체 3D 프린트 총…
  미술품과 자동차 야외 …
  락 그룹 ‘스콜피온스’…
  도넛샵 매매
  도넛샵 매매
  레스토랑을 위한 보험
Main>Column>종교
달라스 칼럼
 
작성일 : 18-04-28 02:35
“광야가 싫다고?”
 글쓴이 : 코리안저널
조회 : 6,193  

“광야가 싫다고?”

윤정용목사 <달라스 인카운터교회> 469-900-6884

“나는 광야가 싫다.”
먼지도 날리고
햇빛도 따갑고
무엇보다도 덮다.  낮에는 뜨거워서 견디기가 쉽지 않고 밤은 꽤 춥다.
나무도 없다.  사워도 못한다. 
풀도 가시덩쿨처럼 군데군데 보기 흉하게 우두커니 서 있다.
인디언 선교 차 갔을때 학생들이 보인 반응이다. 

아리조나에서 8여년을 살았다.
사막(광야)의 환경과 비슷하다.
우선 나무가 없다.  삭막하다.
게다가 스콜피온과 방울뱀이 있어 더 마음에서 멀어진다. 
물론 그곳에서 8여년을 살았지만 본적은 거의 없다.
한 여름에는 평균 110도에서 120도다.
운전대를 잡을 수 없을 만큼 뜨겁다.
계란을 차 본내트에 깨면 후라이가 된다는 우스개 소리를 한다.
어쨌든 광야는 열악하다. 살기에 힘들다.

인생을 광야로 비유한다.
힘들고 어렵고 예기치 않게 다가오는 어려움이 많다는 말이다. 
그런 광야의 모습들이 모두에게 다 있다. 
언뜻 머리속에 스치는 장면들이 떠오른다. 

신학공부를 막 시작한지 몇개월이 지나지 않아 폐결핵에 걸렸다.  1년 반동안 약을 한움큼씩 먹었다. 
한밤중에 피를 토했으니 얼마나 놀랐겠나?

남들가정과 달리 어린 시절, 어머니가 필요한 때에 어머니 없는 큰 빈공간 속에서 지냈다. 

신학공부를 마치고 사역지가 없어서 7-8개월동안 어려운 시간을 보냈다.
목회를 하는 동안 이런 저런 힘들일도 겪었다.
이렇게 반문해봤다.
왜 이런 일들을 겪어야 하나 ^^

이런 삶들이 광야의 삶의 일부라면 
그런 삶을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노 땡큐!”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면서
조금씩 영적으로 눈이 뜨여지면서 보니까
광야는 엄청난 영적인 곳임을 깨닫는다.

트루먼 쇼 영화 줄거리가 생각난다.
주인공 트루먼은 평범한 보험회사의 직원이고 유쾌한 성격의 소유자이지만
뭔가 세상이 조금씩 이상하다는 낌새를 챈다. 
하지만, 정확히 이것이 무엇인지는 잘 모른다.
영화 초반부터 이것이 연출된 장면이고 트루먼이라는 사람의 일대기를 몰래 촬영하고 있다는 것을 모른다. 
트루먼 주위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은
역활을 대행하는 연극인들이다.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세트장에서
살아야하는 트루먼의 삶, 이런 삶을 의심하고, 부정하고,
벗어날려고 몸부림 치는 그는 마치 인간이 하나님이 만든 세트장에서 하고 있는 모습처럼 느껴진다.

광야는 사람들이 싫어하는 곳이다.
광야는 사람들이 겪고싶어하지 않는 열악한 환경이다.
하지만,
영적으로 광야는 하나님이 인간들을 위해서 특별히 제작한 특별세트장이다.
늘 주시하시면서 필요한 것들을 채워주시며서 돌봐주시는 곳이다.
그가 기대하고 원하는 사람을 만들고자하는 특별훈련의 장이다.
마치 영화에서 사람들이 트루먼을 보면서 모든 상황을 만드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오늘날 성도들은
그런 광야의 혜택을 잘 누리지 못하는것 같다.
고생을 그냥 고생으로 끝낸다.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을 나쁜 기억으로 남긴다.
물론,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자신도 여기에서 자유롭지는 않다. 
분명히 하나님이 우리를 향한 기가막힌 사랑과 보호와 인도하심의 
특별한(?) 사랑의 세트장인데도 늘 불평하고 그곳에서 어떻게하면
빨리 벗어날까 울상을 하며 고민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최근에 아내에게 구박을 당했다.
그것은 다름아닌
식당에 가면 나도 모르게
아내에게 이 음식, 저 음식을 먹으라고
강요(?)를 했다는거다. 
왜 내가 먹는 음식을 당신이 정하냐는거다.
나는 이것을 전혀 인식하지 못했다.
그저 맛있는 음식을 아내에게 권한다는 생각에...
정중히(?) 사과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했다.

사랑은 배려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아닌 
상대가 좋은 것을 해 주는 것이다.
사랑하면 뭐하나?
내 생각 내 위주로 한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믿음은
예수님을 따르는 삶이다.
아무리 믿음이 있다고 해도 예수님을 따르지 않고
내가 내 임의대로 살면 그것은 믿음의 삶이 아니다.
예수님이 가면 나도 가고
예수님이 멈추면 나도 멈춘다.
예수님이 가시는 만큼만 가고, 
예수님이 하시는 만큼만 하면 된다.
이것이 신앙이요. 믿음인 것이다.
이것을 광야에서 이스라엘백성들에게 하나님이 요구하신 게 아닌가?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러한 요구를 무시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는
하나님의 계획보다 자신들의 계획과 생각을 우선했다.   
음식을 주시는 하나님을 본것이 아니라
음식이 없을 환경과 여건을 먼저 보았다.
하나님 보다는 환경이 그들에겐 훨씬 컸다.
그러니 과거에 연연하고
당장 현재 불편하고 힘든 문제에 올인하는 것이 당연했다.

요즈음은 지식의 홍수시대에 살아간다.
아는게 너무 많다.
그래서 목회하기도 쉽지 않다는 푸념이 나온다. 
다 안다.
인터넷을 통하여 못접하는 것이 없다.
원하기만 하면 한주에도 설교를 수십편을 접할수도 있다.
다양한 지식들을 접할 수 있다. 
또한 훈련과 교육의 기회가 얼마나 많은가? 
오늘날은 모두가 성경 전문가다. 
대단하지 않는가!

그런데
너무 잘 알고 똑똑하고 많이 배운다는 것이 긍적적인 면도 있지만 부정적인 면도 없지 않다. 
영적으로 더 깊이, 더 높이, 더 성숙하게 되는데  걸림돌이 된다는거다.  아이러니하다.

과거에는 못배우고 잘 알지 못해도
한가지는 분명했다. 
하나님에 대해서 잘 알았다.
믿음의 선배들이 한국교회를 일으켜세우고 한국교회를 지탱한 것도 
그들이 학위가 높았기 때문이 아니라 많이 알고 있어서가 아니라
천지를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
그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알았다. 
그 예수님을 아니까 세상이 만만해 보인거다. 
그 예수님 때문에 고난도, 핍박도, 가난도, 질병도, 부끄러움도 하찮게 보인거다. 
그 예수님이 얼마나 컸으면 그 분 때문에 순교도 기꺼이 감당했다. 
훈련과 공부가 아닌 그분을 아는 것이 그것을 가능케했다. 
그렇다고 공부가 나쁘다는 이야기는 절대로 아니다.
공부해야한다.   

그분이 누구인지를 잘 알면
절대로 예수님이 먼저 가지 않는데 내가 먼저 갈수 없다.
그분과 늘 교제하면서 산다면
그분이 가지 않는 곳에 내가 먼저 발을 내 딛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다. 
그분이 나의 왕이요 나의 주인이라면
그분의 의견을 먼저 묻지 않고, 그분의 허락없이 내가 내 마음대로 내 인생의 핸들을 함부로 돌릴 수 없다.

믿음생활은 간단하다.
예수님이 가면 나도 가면 된다.
예수님이 하시면 나도 하면된다.
반대로,
예수님이 멈추시면 나도 멈추어야 한다.
예수님이 안하시면 나도 안해야 한다.

광야라는 곳은
예수님이 먼저 가시고 나는 따라가는 곳이다. 

그러면,
우리를 책임지시고 돌봐주시는 그분의 손길을 늘 경험한다.
배고파지면 만나도 메추라기도 주신다.
춥고 위험하고 어디를 갈지 분간하지 못하면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보호하시고 지켜주신다.
목마름도 문제없다. 반석에서라도 물을 내서 주신다.

우리 인생의 문제는 강이 해결해 주지 않는다. 
우리 인생의 문제는 기름진 땅이 해결해 주는 것도 아니다. 
이것 저것 소유하는 것들이 절대로 해결해 주지 않는다. 

예수님이 해결해 주신다. 
강을 찾아가고 기름진 땅을 찾아가고 결실이 풍성한 곳으로 가게 하는 곳이 광야가 아니라
예수님을 찾아가고,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이 계신 곳으로 가게 하는 것이 바로 광야다.
그 예수님이 계신곳이 곧 기름진 땅이요.
그 예수님이 일하시는 곳이 바로 천국이다.
눈에 보이는 표면의 삶을 쫓아서 살면 안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이면의 삶, 예수님이 함께 하시고, 일하시는
삶을 쫓아서 살아야 한다.

세상을 다 가져도
예수님을 잃으면 다 잃게 되지만
세상을 다 잃어도
예수님을 가지면 다 갖게  된다.
하나님이 우리를 버린 곳이 광야가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이루는 곳이 광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광야는 우리에게 매우 좋은 곳이다.


 
   
 

    2828 Forest Ln., #2325 Dallas, TX 75234 | E-mail: kjdtx21@yahoo.com | 전화번호 : 972-406-2800 | 등록일자 : 2010년 3월10일 | 발행·편집인 : 김종호
    모든 콘텐츠를 커뮤니티, 카페, 블로그 등에서 무단 사용하는 것은 저작권법에 저촉되며,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by KOREAN JOURNAL N. TEXA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