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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스 칼럼
 
작성일 : 18-06-09 01:32
부끄러움이 아니라 사랑의 통로:: 연약함
 글쓴이 : 코리안저널
조회 : 6,375  

부끄러움이 아니라 사랑의 통로:: 연약함

윤정용목사 <달라스 인카운터교회> 469-900-6884

전에 페이스북을 통하여 김동호목사님의 글을 읽었던적이 있다.
그 내용인 즉, 부천의 여중생 아이가 부모에게 맞아서  죽었는데 그 부모가 시체를 방안에 두어 백골 상태로 발견되었단다.
그런데 그 딸아이를 때려 숨지게 하고 그렇게 시체를 방치해 둔 아버지가
다름아닌 목사이고 독일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신학교 교수란다.
사람들은 어떻게 목사가? 어떻게 박사가? 신학교 교수가? 이럴수가….라고 경악한다.
김목사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목사가 뭔데? 박사가 뭔데?”
목사와 박사는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 누구든 그 사건의 주인공일 수 있다는 것이 그 글의 요지였다.

전적으로 동감한다.
그렇다. 이 땅에 살아가면서 누가 누구를 감히 정죄할 수 있겠는가?

오늘도 예수님의 흔적을 나의 삶속에서 찾다가
과거에 일어났던 해프닝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하고 회개하는 마음을 주님이 주셨다.

“여보, 큰일났다.
천정에서 물이 새고 있어…”
아래층 서재와 차고쪽에서 물이 천정에서 떨어지고 있었다.

사실, 달라스에 이사를 와서 5년간 묵혀 둔 비데를 지인의 도움으로 설치했는데… 연결부분에 문제가 있었던지… 보이지 않게 조금씩 물이 새었던 것 같다.
하루정도 천정에서 물이 샜는데…
그 이유를 발견하지 못하다가 주인이 와서야
화장실에서 조금씩 물이 떨어져서 그렇다나… 전문업체 사람을 부르니…
“물에 젖은 천정과 벽을 빨리 말려야 하고 이층 화장실 바닥도 다 다시 해야하고….
또 비용도 꽤 많이 나올거라고“
집주인이 가지고 있는 홈 오너 보험으로 커버가 가능하니까 걱정하지 말고
자신에게 맡기면 다 해결 된다는 듯 자신있게 말해준다.
안심이 된다.

그런데 주인 왈, “디덕터블이 3천불”이라서 3천불은 내야하니까…
목사님이 빨리 렌탈보험을 먼저 들라고 재촉한다.
그리고 물이 샌 날짜를 렌탈보험든 날짜보다 조금 앞으로 둘러대면 괜챦단다. 
렌탈 보험이 다 그렇게 사용하니까 걱정 말란다.

마치 어린 아이가 위엄이 가득한 나이드신 선생님 말에
토도 달지 못하고 고분 고분해지듯,
빛의 속도로 렌탈 보험을 들었다. 
그리고는 하루가 지났다.
그리고는 보험회사에 클레임을 요청했다.

그런데 문제는 날짜였다. 
언제 그 일이 일어났는가? 
태연하게 보험들고 하루후에 일어났다고 둘러댔다.

그런데 얼마후에 클레임 담당자가 집 주인에게 전화를 해서 
묻기를 “나를 아느냐”는 전화가 받았다고 알려왔다. 
보험 사기 의심을 하는 것 같단다. 

그 전화 이후 집주인이 앞으로 전화오면
이렇게 저렇게 이야기하면 될거라는 지령(?)을 받고
그대로 숙지했다.  그리고는 얼마 후 보험 담당자가 연락이 왔다.
언제 이 일이 일어났는지… 보험은 언제 들었는지… 뭔가 이상하다는 듯,
집요하게 여러질문을 해 왔다.  미리 예습(?)한 대로 모범답안인양 둘러댔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집주인의 홈오너보험과 내가 들었던 렌탈보험이 같은 보험회사였는데 
집주인도 클레임했고 나도 클레임한 것이 문제의 발단이었다. 
두가지가 같은 클레임인데 같은 주소로 나오니까 뭔가 이상하다고 본 것이였다. 

전화를 끊고 난 후에 갑자기 밀려오는
자괴감과 부끄러운 모습이 큰 파도처럼 마구잡이로 밀려오는데
그 때의 그 상실감과 불편함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이것은 돈의 문제가 아니었다.

비록 주위에서 그렇게 하라고는 했지만
내가 누구인가? 목사 아닌가?
이곳 달라스에 주님의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 준비했고 사역을 감당하는 목사가 아닌가?
늘 주님과 동행하며 살리라 기도하고 마음을 정한지 얼마나 되었다고...
분별력없이 말을 바꾸고 거짓말을 한다.

그렇게 많고 많은 보험회사중에 어떻게 주인의 보험과 같은 보험회사일 수 있었을까?
이것은 어떻게 하다가 운(?)이 없어서 그렇게 된 것일까? 
아니다.  우연히 된 일이 결코 아니다.
이것은 주님이 간섭하신 결과이다. 
주님이 현재의 나의 영적 상태와 모습을 상황을 통해서 정확하게 보여주신거다. 
그리고 말씀하신다.

“야! 윤목사…. 정신차려!
이런 정신나간 녀석!
그 정신으로 무슨 목회를 한다고…..”

마치 하늘에서 큰 망치가 내려와 내 뒤통수를 내리 치는 듯한 강한 충격이 전해졌다.
한 동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리고 당장 꼬리를 내렸다.

집주인에게 돈이 얼마되던 저희가 책임질테니 고치시라고…
보험으로는 안하겠다고 알려주었다.

주인은 어이가 없다는듯이 말한다.
“아니.. 그렇게 하실필요가 없는데…”

주님이 이 해프닝을 통하여 분명히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다.
“알았냐? 네가 얼마나 부족하고 연약한지… 네가 목사라고?
그래… 네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뭐가 있더냐,”
“내가 오늘 네 본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었느니라”

그렇다.
세상에는 “나는 자신있다.”
“나는 문제없다”고 큰 소리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비록 목사라 할지라도… 박사라 할지라도…말이다.

세상에는 두종류의 죄인밖에 없다.
하나는 들킨 죄인과 다른 하나는 아직 들키지 않는 죄인…
하나는 행동으로 옮긴 죄인과 다른 하나는 아직 행동으로 옮기지 않은 죄인…
하나는 마음으로 지은 죄인과 다른 하나는 행동으로 지은 죄인…

나는 조금 완벽을 추구하는 성향이 있다.
또한 상황 판단과 대처하는 행동이 타인에 비해 빠른 편이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러다보니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보거나 함께 일을 하면
나 자신이 많이 힘들어하는 경향이 있다. 

그것이 늘 아내에게 혼(?)나는 부분이기도 하다.
제발 그런 사람들을 좀 이해하란다.
“어떻게 모든 사람이 당신과 같을 수 있느냐”는거다.
문득 “일만 달란트 빚을 진 사람의 비유”가 떠오른다.
왜일까?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아니하냐…”(마18:32-33)

그렇지…
내가 다름아닌 일만달란트 빚진 자였었지.
그런데 그 빚을 탕감받았었지…
이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큰 은혜다.
이런 큰 은혜를 받은 자가 도대체 무엇을 이해못하겠는가? 
또한 누구를 용납하고 용서하지 못하겠는가?
이 큰 은혜만 붙든다면 말이다.

내가 부족하다는 것, 스스로에게 연약한 모습을 인지하면 할 수록
그것은 굴욕적이고 부끄럽고 실패의 모습이 아니라
더 주님께 나아가게 하는 하나님의 은혜통로임을 다시 깨닫는다.

어그스틴의 말이 생각난다.
“우리의 약함이 사람들의 사랑이 들어오게 하는 통로라는 걸...”

너무 완벽하게 살려하는 것도 매우 위험하다.
예수님의 공간을 인위적으로 막는 우를 범하기 때문이다.
연약함이 예수님의 은혜의 통로요. 사랑의 통로요. 함께하심의 통로라면
나의 연약함이 곧 나의 자랑이고 강함이다. 바울처럼...

오늘도 이런 소원을 주님께 올려드린다.
주님! 나는 주님 한분만으로 만족하는 목사가 되고 싶습니다. 
주님! 나는 주님 한분만으로 행복해하는 목사이기고 싶습니다. 
때로는 자신의 연약함과 부족함이 때로는 힘들수도 있지만 주님께 가까이 나아가게 하는 통로이기에
그것도 감사의 내용으로 받아들입니다.

“연약함을 통해서도 당신의 사랑을 공급해 주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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