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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스 칼럼
 
작성일 : 18-09-29 01:07
“거룩한 무기력”
 글쓴이 : 코리안저널
조회 : 294  

“거룩한 무기력”

Jeong Yong Yoon <yjy9757@gmail.com>
윤정용목사 <달라스 인카운터교회> 469-900-6884

“아휴! 저걸 그냥 ^^”
“저런 인간들은 비오날 먼지 나도록 패야돼.”
운전하는데 갑자기 신호도 안넣고 끼어드는 차를 향해서
그렇게 쏘아 붙였다.
간만에 만난 친구 목사 왈,
“오 ~ 윤목사, 아직 안죽었어...
아주 팔닥 팔닥 살아~있~네.”
웃으면서 별의미없게 들었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왠지 마음이 불편했다. 
“아직 살아 있네”란 말이...
“여전히 한 성격하네!”
이런 의미로 들려지니
감추어진 모습이 들추어진 것 같아
마음이 좋지 않았다. 

무엇이 사람을 힘들게 할까?
그것은 부정적 ‘사실’을 사실 그대로 이야기할때다.   
가난한 사람에게 “당신 가난하지?”하면 기분나빠한다.
공부못하는아이에게 “너 공부못하지?”하면 화낸다.
맞는 말이지만 기분은 상한다. 

돈 많은 부자에게 ‘당신 가난하지?”하면
그냥 웃고 넘길일이지 화내지는 않는다. 

뭘 말하고 있는가?
사람은
자신이 드러내고 싶지 않는 부분이 있다.
자신이 감추고 싶은 것도 있다. 
그것이 들추어지거나 지적당하면
부정적으로 반응하게 된다. 

그러나
내가 먼저 쿨하게 인정하게 되면 어떨까?
누가 말하고 지적당하기 전에
“나는 가난하다.
나는 부족하다.
나는 완악하고 강팍하다.
나는 죄인이다.
나는 이런 저런 사람이다.  그래서 뭐?”
그러면 자신의 약점과 부족함을 적어도
감추고 방어하는 가운데 나타나는 부작용은
없앨수 있지 않겠는가.

싱가폴에서 있었을 때 이야기다.
한 부부에게 행동발달장애를 갖는 아들이 있었다. 
아들나이가 13살인데 지능은 5살 6살이다.
그 부부는 누구봐도 엘리트출신이다.
남편은 하바드대학을 나오고 회사의 간부로 있었고
부인은 일본에서 유학을 하고 연구소에서 일하는 재원이다.
외관적으로 본다면 부럽고 멋진 부부다.
그런 부부에게 발달장애 아들이 있었다.
수년간 이 아들을 집에 감추고 살았다.
이 아들을 누구도 보지못하게
사람들을 집으로 초대한 적이 없다. 
물론 교회에도 데리고 오지 않았다.
그렇게 사는 게 운명이라 여겼다.
아들이 노출될려는 상황이 생기면
어쩔 줄 몰라 당황해 하며 이 핑계 저 핑계를 되면서 상황을 모면했다. 
작은 것에도 큰 상처를 입고 힘들어했다.

그런데
어느날 부인이 꿈을 꾸었다.
그 꿈속에 예수님이 나타나서
이렇게 말씀하셨단다. 

“아들 키우느라 많이 힘들지...”
“그런데…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을 찾고 찾는 중에 너희 부부를 찾았다.
그리고 너희 부부에게 이 아이를 맡겼는데 좀더 수고해 주렴”

이 부인은
예수님이 이 아들을 위해서 찾고 찾아 맡긴 사람이
그들 부부이고 그리고 그들에게 보냈다는
말에 그때까지 아들을 부끄러워했고, 
아들을 숨길려고했고, 아들에 대해 불평했던 지난 모든 모습들을 콧물 눈물 흘리며 회개했다.

그 이후, 
이 아들을 세상 밖으로 데리고 나가기로 했고
그 아들를 통해서 일하시는 예수님을 나누는 삶을
살수 있었단다. 
그리고 덧붙이는 말....
이 아들때문에 우리가 우리 자리를 지켰고,
우리가 해야할 일을 했고, 우리가 가져야한 겸손의 모습을
갖게 해 주셨다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는 말을 늘 입에 달고 살았다. 

이 이야기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이야기일수 있다.

감추고 싶고, 드러내고 싶지 않는 것들이
얼마나 우리를 수동적으로 만들었고
우리를 강팍하게 만들었고
우리를 힘들게 했던가?

믿음이란?
다름이 아니라 나의 연약함을 쿨하게 인정하고
주님이 일하시는 통로로 보는 것이다.
그런 연약함과 허물를 통해서도 일하시는 분이 예수님이라고 인정하는 것이다.

사도바울을 보라.
그도 사역가운데 자신의 육체의 가시를 가졌다.
그런데 기도했는데 낫지 않았다.
수 많은 병자들을 고치고 복음의 능력을
드러내는 능력의 종인 바울이
진작 자신의 문제는 제대로 해결 조차 못하니
그것이 얼마나 부끄럽고 그를 괴롭혔겠는가?

그런데 그는 결국 이렇게 극복했다.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때에 곧 강함이니라.”(고후12:10).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했다. 
주님은 그의 연약함을 통하여
주님의 능력을 드러내는 자랑거리가 되게 하셨다. 

세상은
얼마나 가졌느냐?
어떤 능력이 있느냐?
어떤 배경을 가졌나?로 사람의 능력을
판단하다.

그러나
신앙은 다르다.
“내가 얼마나 가졌느냐”가 아니라
“예수님에게 붙들려 있느냐”
“내가 얼마나 영향력을 끼치느냐”가 아니라
“예수님의 영향력속에 있느냐”에 따라
믿음이 있느냐 없느냐
성령충만한지의 여부가 결정된다.

깊은 영성과 큰 믿음으로 들어가려면
세상방법과 관점으로 접근해서는 안된다.
나의 부족함과 연약함도
주님 안에 내가 있다면
그것 또한 하나님이 사용하는 도구이리라. 

그러므로,
거룩한 무기력은
예수님이 일하시는 환경이기에
더 이상 부끄러움의 모습이 아니다.
주님안에 있는 한 말이다.

“세상에서의 무기력은 부끄러움 그 자체지만 
주님안에서의 무기력은 거룩한 무기력 곧 능력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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