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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스 칼럼
 
작성일 : 18-10-13 02:01
흉터는 상처를 극복한 흔적이다
 글쓴이 : 코리안저널
조회 : 727  

흉터는 상처를 극복한 흔적이다

Jeong Yong Yoon <yjy9757@gmail.com>
윤정용목사 <달라스 인카운터교회> 469-900-6884


진주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을 것이다.
보드라운 조갯살에 거친 모래알이 들어온다.
부드럽고 여린 조갯살에 모래알이 들어오니
조갯살 입장에서는 그 불편함과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닐게다.
이것을 이겨내기 위해서
생명의 즙을 짜서 그 모래알을 감싸고 
또 감싸고 감싼다.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감싸주면
그 흉터 크기가 점점 커지게 되는데...
나중에 그것이 진주가 된단다.

조갯살의 입장에서 모래알은
고통와 아픔의 원흉이다.
얼마나 밉고 싫겠는가.
모래알로 인한 상처와 아픔은
조개입장에서는 이보다 더 큰 흉터는
없을게다.

우리의 인생도 돌아보면
상처로 인한 흉터들이 몸 여기저기에 있다.
물론 몸에 보이는 흉터와
몸에 보이지 않는 흉터들,
즉, 마음의 흉터들 포함해서 말이다.

왜 몸에 흉터들이 있을까? 

나에게는 30년전에 군대에서
겨울 혹한기 훈련받을 때 걸린
무좀의 흉터가 왼쪽엄지발톱에 
훈장(?)처럼 웅장하게(?) 잘 새겨져 있다.

그래서
사람들 앞에서 맨발을 보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최근까지도 그랬었다. 
한번은 교회에서 세족식을 하는데
얼마나 고역이었는지...
주위의 사람들은 몰랐을거다. 
발씻어주는 분에게 얼마나 미안하고 죄송스러운지...
또한 무좀이 있는 그런 내가 싫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당당하게 말하게 되었다. 
‘아 ~ 이거요? 한겨울에 군에서
일주일식 군화를 벗지 않고
훈련받다가 생긴 무좀입니다.
다 군생활 열심한 결과 아니겠어요?
하하하…” 

사람들은 자신들의 흉터를
숨기려한다.
다른 사람이 보면 큰일나는 줄 안다.
왜냐하면 그 흉터를 부끄럽게 여기니까
그렇다.

왜 흉터가 부끄러운가?
부끄러운 일의 결과라서 그런가?
그렇다면 그럴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면
몸의 흉터에 대해서 
부끄러워할 이유가 전혀 없다.

상처가 흉터가 되는 것은
그 상처를 잘 극복하고
이겨낸 결과이자
멋진 열매이다. 

상처가 흉터가 되기까지
그 과정속에 있었던 수많은 눈물자욱들, 
이겨낼려고 몸부림친 아름답고 숭고한 몸부림들,
때로는 낙심과 절망속에서도 당당히 일어선 모습들,
이런 것들이 어찌 불필요한 것이고 부끄러운 것인가?
이 모든 과정 끝에 그 흉터가 만들어진 것이다.   

한 아이의 아버지가 있었다.
그 아버지는 한번도 긴팔옷을 벗은 적이 없다. 
사람들은 왜 그 아버지가 긴팔을 한번도
벗지 않았는지 잘 몰랐다.   

과거에  화상으로 인해서
팔을 많이 다쳤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보이기 원치 않아서다.

 딸도 여름에도 긴 팔을 입는 아버지를
이상하게 생각하는 친구들이 그 이유를 물을 때
부끄러워서 제대로 이야기 하지 못하곤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빠의 팔에 화상을 왜 입게 되었는지를
딸이 알게되었다.
2-3살때 부엌에서 놀고 있는 딸 머리위로
끓는 기름이 쏟아지는 걸 아이를 낚아채며
자신의 팔로 아이 대신 기름을 받아내었던 것이다. 
딸은 이 이야기를 듣고 난 뒤로는
아빠를 달리보게 되었다.
이제는 더 이상 아빠의 팔에 흉터가 흉하지 않다.
아빠의 팔의 흉터가 자신을 향한
사랑의 심벌이자 표식이라 생각하며
그 흉터도 이쁘고 아빠도 더 사랑한다. 
물론, 그 딸이 커가면서
더 깊은 흉터의 은혜를 누리게 될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나의 흉터들에 대해
많이 부끄러워했다. 그래서 숨길려고 애썼다.
이 흉터들을 부끄럽게 여기는
나의 모습속에 
‘또 다른 나의 자아’를 발견했다.
그것은 상처와 아픔 후에
얼마나 더 건강해지고 좋아졌는지를 간과하고
타인의 눈에 어떻게 비추어지는가에 몰두하는 자아였다.
우리의 자아의 가치는 타인의 눈에 의해서 정해지지 않고
하나님에 의해서 정해진다. 
하나님 입장에서는
우리는 두고 보기에도 사랑스러운 존재다.
왜? 예수님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어느 날,
주님 앞에 홀로 서 있는 나를 본다.
마치 눈을 크게 뜨고 자세히 보라는 듯
밝은 불빛으로 자신의 옆구리를
비춰준다. 
밝은 불빛을 자신의 두 손에
비춰준다. 

깊이 파이고 흉칙한 흉터들을
보라 하신다.
마치 자랑 하듯이 웃으시면서
당당하게 보라 하신다. 

그 흉터를 한번 보시고 나를 한번 보시고
그 흉터를 또 보시고
또 나를 보신다. 

그 흉터는 다름아닌
나를 살리시면서 생긴 것이고,
죽기까지 나를 사랑하신 흔적임을
각인시키시듯 말이다.

그렇다.
예수님의 흉터는 부끄러움이 아니라
숨기고 싶은 것이 아니라
그냥두면 죽을 수 밖에 없는 나를
이유없이 무조건 사랑한 흔적이다.
이유없이 욕먹고 매질당하고
죽음의 자리로 스스로 간 흔적이다.
그런데 이 흉터가 부끄럽다고?
그런데 이 흉터가 드러날까봐 전전긍긍한다고?
이 흉터는 이 땅에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가질 모든 종류의 흉터가 얼마나 자랑스러운지를
미리 알려주는 복선과도 같다.

더 이상
흉터는 상처와 고통을 주지 않는다.
상처와 고통을 거쳐서 이미 흉터가 되었기 때문이다. 

주님은,
“수고했다. 잘했다. 장하다”하시면서
나의 흉터를 자랑스럽게, 사랑스럽게 보신다.
자신의 흉터로 그 모든 흉터가 잘 아물었기 때문이다.

모세가 40년동안 광야에 있을때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그는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No one 이라는 인생의 흉터에 대해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출3:12)고
위로하고 격려해 주신 분...
자신은 아무것도 아닌 존재,
쓸모없는 존재라고 생각했지만
하나님은 내가 사랑하는 모세,
내가 앞으로 큰 일을 맡기고 사용할 모세로
말씀하시면서 그를 세워주셨다.

우리에게
흉터가 있는가? 몸에? 아니면 마음에?
주님의 음성을 들으면서 나를 안아주자.
그리고 이렇게 말해보자.
“괜찮아. 괜찮아. 수고많았다.”

꼭 기억하자.
“나의 이 흉터는  상처를 극복한 흔적이다” 라는 것을...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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